Good Samaritan Team 선한사마리아

선한사마리아

Good Samaritan

부서소개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회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 가운데 있는 분들과 작은 도움이라도 나누고자 합니다.
문의: 서대도 목사 916-764-1000, e-mail: sacnewlife@gmail.com

말씀표어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앞에 비치게하여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16절)

“너희는 반드시 구제 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라”
(신명기 15장 10절)

중점사역


1. 교회 내, 외 구제활동 :
목사님과 협력하여 교회내 권사님들 가정 방문, 지역 노인회 식사대접 참여, 독거노인을 위한 밑반찬 나눔, 노숙자봉사, 난민구호 대상 무료 의류 및 생활 용품 제공..등

2. 새 생명교회 학생등을 위한 도우미 역활

오늘날처럼 사회복지가 사회적으로 전폭적인 관심을 끈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만큼 가난한 자를 돌보는 구제가 개개인의 관심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고민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고린도후서에는 예수님을 ‘가난한 자를 위하여 오신 분’으로 표현한다(고후 8:9). 실제로 예수님의 메시지는 인간의 영혼구원에 대한 구속의 은총을 담고 있지만,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선포는 개인의 영혼구원만이 아닌 통전적(統全的) 구원을 담고 있다. 그래서 주님은 병자들을 치유하며 사회적 약자들을 위로하고 그들과 함께하셨다. 이런 복음의 메시지를 오늘날의 교회가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때이다.

진리의 빛과 사랑의 따뜻함 (교육과 구제)


예수님께서는 교회가 세상가운데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 ‘산위에 동네’(마 6:14)라고 표현하셨다. 그렇다면 굳이 교회가 산위에 자리 잡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마 6:16)이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이유이고, 이것은 교회가 세상에 빛의 역할을 감당할 때 가능하다. 빛을 비춘다고 할 때, 빛의 두 가지 속성을 생각할 수 있다. 먼저는 어두움을 밝혀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게 하는 복음전파-가르치고 복음을 전함-가 있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긍휼 베풂-병고침과 육적 필요를 채워줌-이 있다.

불신자의 눈에 비치는 교회의 외적 표지


그래서 교회의 외적 표지에서도 단연 첫번째는 ‘말씀의 바른 전파’이다. 이어 ‘성례의 바른 집행’과 ‘권징의 바른 시행’도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어찌 보면 교회에 속해 있는 성도들에게만 의미 있는 표지일 것이다. 그러기에 복음도 세상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요즘처럼 교회가 점점 고립무원의 상태로 빠져 들어가는 것은 어쩌면 세상 사람들의 눈높이로 복음을 표현하는 교회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진리를 담는 그릇이 변하지 않고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진리를 담는 그릇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이다. 더 이상 교회가 예배당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가르치는 사역이 이제는 교회 담을 넘어 세상으로 뻗어가야 한다. 전하는 것으로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며, 허기진 배를 채울 것인가? 이에 대해 개혁주의의 선구자인 칼빈이 제네바에서 어떻게 일반시민을 위해 가르치는 사역에 천착했는지, 그리고 그의 목회사역 중 어떻게 긍휼사역을 이해하고 실천에 옮겼는지를 살펴보자 .

 

1. 가르침(교육):지역사회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점진적이나 강력한 방법

예수님의 사역을 세 가지로 정의 내린다면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며,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것이다(마 4:23; 9:35). 예수님의 사역 첫 번째는,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어디를 가시든 예수님은 가르치셨다. 이런 예수님의 사역이 사도들과(행 5:42) 바울의 에베소의 두란노 사역(행 19:9~10)에서도 잘 계승되었음을 볼 수 있다.

칼빈에게도 이런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교회 밖에서 많은 이들에게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르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한 끝에 당시 기존의 학교에서 일반적이었던 중세교회적 세계관, 그리스-로마의 세계관에 따른 학교모델이 부족한 것으로 보고, 새롭게 개혁된 종교와 그 세계관에 따른 학교교육의 필요를 위해 1559년 제네바 학교를 설립했다.

첫번째는, 오랫동안 타종교에 물들어 있던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 배타적이거나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일평생 교회를 접하지 못한 이들에게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알릴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어린 영혼의 심령 속에 그리스도를 심는 교육이다. 아이 한명 한명에게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성적 교육과 더불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자라나도록 하는 교육에 힘써야한다.

세 번째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기독교적 세계관을 심어줄 교육이 필요하다. 오늘날 학교 교육은 출세와 부귀와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등학교는 물론 그 이전의 모든 교육을 대학입학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명목상의 교육만 있을 뿐 실제적인 교육이 없는 상태이다. 게다가 인성교육의 부재로 전인적인 교육은 기대조차 힘들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성경적 인간상, 개혁주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체득하는 교육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한다. 칼빈이 제네바 학교를 통해 향후 개혁주의를 확산시킬 인재들을 길러냈다. 물론 교회마다 역량이 다를 것이다. 어떤 곳은 교회의 크기에 걸맞게 공부방을 운영하는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기독교세계관을 심어줄 수 있는 노력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 긍휼베풂 (구제):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방법

예수님도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기 위하여 오셨다(고후 8:9). 초대 교회의 사도들도 구제를 위해 별도로 집사제도를 만들었다(행 6장). 바울도 그의 사역을 평가하면서 구제에 힘썼다고 한다(행 20:35; 24:17). 그런 의미에서 구제는 교회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종교개혁당시 정치적·종교적 난민들의 피난처였던 제네바에서 칼빈의 구제사역은 개혁주의 교회가 어떻게 사회와 소통하며 그들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지에 대한 혜안을 제시한다. 먼저 칼빈이 1541년 9월 시의회에 제출한 교회법 안에서 집사직은 병자와 가난한 자를 돌볼 책임이 있고, 그 목적을 위해 재정을 관리하는 직분이었다. 칼빈은 이 교회법에 근거하여 이미 1535년에 설립된 종합병원(구빈원, General Hospital)에 재정모금담당과 분배담당 등과 같은 집사를 세웠다. 그리고 제네바로 몰려드는 가난한 프랑스 개신교도들을 돕기 위해 1945년 프랑스기금(French Fund)을 설립하여, 세 명의 집사들을 임명하였다. 이처럼 칼빈의 직제에 있어서 집사직이란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 기독교적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통로였다.

우리 새생명 교회가 어떻게 그늘지고 소외된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것인가. 지역의 소외된 어르신들과 한부모 아이들을 섬기는것 일수있다. 지역의 독거노인가정이나 장애인 가정을 대상으로 여성도들이 며느리처럼 돕는 것을 사역의 목적으로 삼을수있다. 독거노인 가정이 변변한 반찬 하나 없이 식사를 하는 것이 안타까워 매주 따뜻한 국과 반찬을 준비해서 나눌수있다. 특히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같이 바깥 거동조차 여의치 않은 분들은 병원에 모셔다 드리거나, 말벗이 되어주어 좋은 이웃이 되어 줄수있다. 뿐만 아니라 호스피스 교육을 통해 임종 직전의 노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도움을 드릴수있다.

 

3. 결론: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est reformanda)

우리는 이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한다. 진정 개혁주의 신학이 가장 성경적인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면 개혁주의 신앙을 드러낼 개혁주의 교회도 가장 성경적인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원리를 동시대 사회에 적용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교회를 산위에 동네로 세워주신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전인적이고 통전적인 구원선포(전하고, 가르치고, 치유함)가 어떻게 사람들의 삶속에서 실현되는지를 교회가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고치고, 먹이심) 보여주어야 한다.
개혁주의 교회는 칼빈주의 교리와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굳건하게 견지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인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이 슬로건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물려받은 그 고귀한 유산을 이 시대 사람들과 나누지 않는다면 주님 앞에 설 때 우리는 무어라 대답할 수 있을까?

올바른 구제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에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시며 서로 사랑할 것을 말씀하셨으며(마 19:19),

특히 ‘고아나 과부를 돌아보라'(출 2:22 ; 신 14:29 ; 약 1:27)고 곳곳에 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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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한 분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부모로 섬기고 있는 영적인 형제 자매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믿음 안에 있는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모르는 이웃일지라도 행함과 진실함으로 돌아보면서 선한 행실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많은 영혼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녀들을 기뻐하시며 넘치는 축복으로 갚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역사하시며 하늘나라에서도 상급으로 갚아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구제는 무엇이며 어떠한 방법으로 행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명하신 구제

사전을 보면 구제(救濟)란 ‘불행이나 재해 등으로 어려운 지경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것’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그의 백성들에게 구제할 것을 명하셨는데 신명기 15:10-11에는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2:15-17에는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삶을 사는 이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물질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잠시 청지기로써 맡겨주신 것임을 깨달아 내 이웃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구제를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을 통해 세워진 초대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행함으로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는데 특이한 것 중에 하나는 구제가 활발히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는 공동체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행 2:42-47).

2. 구제하는 자에게 임하는 축복

잠언 11:25을 보면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했는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구제를 행하면 놀라운 축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9:36 이하를 보면 욥바에 살고 있던 ‘도르가’라는 여인은 평소에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는데 그녀가 병들어 죽었을 때 베드로 사도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축복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한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이방인이었던 백부장 고넬료가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기억하사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베드로 사도를 보내어 온 가족에게 성령 세례를 베풀어주시며 놀라운 구원의 축복을 주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끊임없이 구제와 선행을 베풀며 남을 윤택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며 영생의 축복과 함께 이 땅에서도 놀라운 축복을 받도록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 더욱 구제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구제 방법

요한일서 3:17-18을 보면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형제의 궁핍함을 보았다면 도와주되 말과 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6:3-4에는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교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거나 과시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므로 은밀하게 하라고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 중심에서 겸손한 자세로 행해야 할 것을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구제란 내가 물질에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용할 양식을 아껴서라도 작은 정성을 모아 하나님의 전에 구제금으로 드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예수님께서 한 과부가 헌금한 생활비 전체인 두렙 돈을 칭찬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구제 대상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말씀하셨으니 신체적으로 건강하여 얼마든지 자립할 수 있으면서도 게으르고 나태하여 일을 하지 않는 경우는 구제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만일 이들에게 도움을 주면 오히려 자립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진정한 도움은 자립해야겠다는 의지와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서 시험 환난 가운데 빠져 있는 사람을 도와주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죄를 깨닫고 돌이켜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므로 만일 이러한 사람의 어려움을 도와주게 되면 죄를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도와준 사람도 함께 환난에 빠지게 됩니다.

따라서 구제를 할 때는 생활 능력이 없으나 믿음을 갖고 생활하려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즉, 갑자기 불의의 사고를 만나 자립할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사람이나, 일을 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 생활 능력이 없는 고아나 과부, 소년소녀 가장 등의 경우입니다.

그리고 구제를 하고자 할 때는 교회 앞에 구제 헌금을 드림으로 교회의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를 통해 복음도 함께 전파되므로 하나님께 더욱 영광을 돌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제를 할 때에 복음을 모르던 사람일지라도 자연스럽게 복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고 참된 생명을 얻게 되니 참으로 가치 있는 영적인 구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구제를 행하여 널리 복음을 전하며 이웃과 참된 사랑을 나누실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읍니다.

2017년 사마리아 구제

  1. Jason Caiado Family
  2. 한국 입양아, 관진 가족 (4명의 자녀)
  3. 아르헨티나 노부부
  4. 김보람 학비 보조
Jason Caiado Family

Jason Caiado Family

Jason Caiado Family

Jason Caiado Family

Jason Caiado Family

Jason Caiado Family

2018년 사마리아 구제

  1. Jonathan Family
  2. INTO Homeless Mission Church
  3. Brandon Scholarship
  4. GiGi Family from Tunisia
  5. 선교사 자녀, 김동욱
  6. 한국 입양아 관진 가족 (4명의 자녀)
Jonathan Family

Jonathan Family

Jonathan Family

Jonathan Family

GiGi Family from Tunisia

GiGi Family from Tunisia